< 문인들의 정신정인 고향, 대구>

대구의 문화, 역사, 문학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저도 사실 대구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지라, 대구의 문화, 대구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아요. 그래서 Joy와 함께 1950년대의 대구 정서를 느껴 보러 대구 향촌 문학관을 찾아 갔답니다. 일단 대구 향촌문학관이 어떤 곳인지 부터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향촌 문학관이 위치한 곳은 1912년 대구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선남 상업은행은 일본인 오쿠라 다께노스꼐가 설립한 은행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동출자로 설립되었으며, 1941년에 식민정책을 지원하는 조선상업은행으로 흡수 되었죠. 그뒤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영업되어 오다가, 2014년 대구의 원 도심을 소중히 지켜나가기 위해 전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또한 향촌문학관이 위치한 향촌동은 경상감영의 화약고가 있었던 곳이기도 해요. 일제 강점기에는 지금의 무궁화백화점 자리에 중앙염매소가 있었는데, 오늘날 중앙시장의 기원이 된곳이랍니다. 대구역이 들어서고 읍석이 헐리면서 도심의 새로운 중심이 자리잡았죠. 그와 함께 6.25전쟁과 근대화의 과정을 증언해주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향촌동은 '예술인들의 거리'였었어요. 피난 내려온 문화 예술인들이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에서 피난살이의 고단한 심사를 달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쏙았던 곳입니다. 음악가로는 김동진, 나운영, 권태호, 연예인 신상옥, 장민호, 최은희, 화가 권옥연, 김환기, 이중섭 같은 이들이 숱한 일화를 남겼죠. 문인들은 다방을 본거지로 삼아 원고를 썼고, 어쩌다 우널고료라도 받으면 근처의 막거리집으로 몰려 갔다고 해요. 또한 인접한 북성롤에서 '경북문학협회'가 창립되었고, 향토시인 백기만이 위원장으로 추대 되기도 했어요. 

향촌동은 그때 그시절 골목마다 자리잡은 다방과 술집에 얽히고 설킨 인연과 추억이 살아 숨쉬는 도심의 아름다운 공간이랍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과 문화와 문학, 음악 작품들을 모아 전시해 둔곳이 바로 향촌 문학관이구요. 지금까지 향촌동과 향촌문학관이 자리한 위치의 역사에 대해 알아 보았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향촌 문학관의 전시공간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들어가 볼까요?


향촌 문학관은 지하 1층,지상1,2층, 기획전시실, 멀티테마 영상실로 구성 되어 있었어요. 지하 1층은 녹향(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전음악감상실)이라는 음악감상실로 꾸며져 있었고요. 지상1층 재현관은 근대 대구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향촌동의 모습을 전시(근대 대구 최고의 상업지 중앙로, 산업의 기반 북성로 공구골목, 전국을 잇는 교통중심 대구역, 피란민의 삶터 교동시장)해 놓았답니다. 

지상2층은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주점 등 문화예술인의 거리였던 향촌동 골목길 체험 공간(백조다방, 카스바, 뚱보집, 문화극장, 오리엔트레코드사, 생애사 열전)으로 구성되어 아이와 함께 간 관람객들에게는 보다 재미있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일것 같았아요. 

각 층마다 자세히 둘러 보도록 할께요. 지하1층~ 지상2층 까지 한번 들어가 볼까요?

[지하1층]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감상실 녹향

일제강점기,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 이창수. 예육회의 결성과 녹향을 시작으로 클래식 음악의 꿈을 펼친 곳입니다. 녹향은 6ㆍ25 전쟁 때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의 보금자리였고, 예육회, 향음회, 애향회 등 수많은 음악 모임이 이곳에서 태동되었어요. 이제는 우리 주변에 음악감상실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보기가 힘이듭니다. 사실 저 조차도 음악감상실이라는 장소를 대구향촌문학관에 가서야 처음 접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창수는 아흔의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 자리를 지키십니다. 자선음악회를 여는 등 녹향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이창수는 세상을 떠나고 아들 이정춘이 녹향을 지키고 있었어요.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녹향’을 시간의 무게가 담긴 공간으로 재구성하여 관람객들이 고전음악감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음악이 푸르른 향기로 온 누리에 퍼진다는 뜻을 품고 영원으로 이어갈 것이다. 


[지상1층]재현관-근대대구 중앙로,북성로 공구골목,피난민의 삶터 교동,교통의 중심 대구역 

그시절 도심의 모습을 실감나는 모형으로 연출한 공간입니다. 모형안쪽의 영상물을 통해 의복체험과양복점 모습과 시계수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 Joy도 교통정리하는 경찰 의복을 입고 그시절의 경찰아저씨가 되어 교통정리도 해보았죠. 너무 귀엽죠?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으로 수도관이나 리어카 바퀴 등을 만드는 철물가게들이 하나 둘씩 생겨 새롭게 공구골목으로 탄생하게 되는 배경과 현재까지 대구 제조업의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영상물과 모형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교동시장은 양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도 불리며 피란민들이 일구어낸 삶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으며, 당시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물품들을 살펴보고, 대구의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피란시절 생겨난 다양한 음식들도 볼수 있었어요. 저도 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았답니다. 누구를 위한 체험학습인지 잠시 잊을 뻔 했답니다. 후후, 그리고 한켠에는 깡통을 팔고, 구두닦이를 하는 소년의 모습을 연출하여 어린나이부터 밥벌이를 해야 했던 생활상과 피란민촌의 모습을 통해 어려운 시절을 꿋꿋이 살아온 우리 이웃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슴아픈 우리나라의 역사이기도 한 삶의 모습이었어요. 아직 Joy는 어려서 그런지 슬프거나, 마음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이 왜 그런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듯 했어요. 그저 그 모습이 웃기는것 같았어요. 후에, 다시 한번 더 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어서 2층으로 향했답니다. 


[지상2층] 재현관-문화얘술인들의 아지트인 다방, 막거리 가게, 그 시절의 극장을 재현

향촌문학관 2층은 향촌동을 추억하는 문화예술인과 현재 살고있는 이웃들을 사진으로 담아 소개하고, 현재는 공간만 남아있는 1950년대 전성기 시절 향촌동의 다방과 술집에 얽힌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았던 향촌동의 다방, 음악감상실, 주점에 모여들었던 문화예술인들은 피란살이의 고단한 심사를 달래며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곳을 모형과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어요. 아이들에겐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또다른 공간에는  피란시절 국립극장이었던 문화극장을 소개하고, 대구에서 제작된 10여편의 영화중 유일하게 필름이 남아있는 태양의 거리 축약영상과 변사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저도 사실 변사 체험은 한번도 해본적도 없고, 들어본적도 없어서 너무 재미있고 신기 했답니다.또한 기증한 유물을 전시하고, 구술 녹취 장소를 구성하여 지속적인 생애사 기록공간으로 만들어나가며, 마지막으로 대구의 역사 연표에 맞춰 개개인의 일생을 기록하는 코너 구성을 통해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역사, 역사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공간입니다. 

이렇게 지하에서 부터 지상까지 향촌문학관에서 하루 신나게 체험과 관람을 한 Joy였답니다. 신기한것도 있었고, 처음본것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된것도 있어서 대구놀러 오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들러 보실만 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주위 지인들에게 막~ 추천하고 다녔답니다. 아직 들러 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아이와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꼭 한번 들러 보시면 좋은 추억이 될거라 생각이 됩니다. 

대구 향촌문학관: http://hyangchon.jung.daegu.kr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 9-1 

연락처: 053-661-2331 

이용시간: 하절기(4~10월) 09:00~19:00. 동절기(11~3월) 09:00~18:00. 
※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행복한 하루 되시고 또다른 글로 찾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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